1991년

1991년 오월전 <오월에 본 미국>, 본격적인 최초의 거리미술전

 “전시라는 개념이 첨가된 ‘거리미술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91년 제3회 오월전부터라 할 수 있다. <오월에 본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제3회 오월전은 1988년 결성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이하, 광미공)에서 주관한 전시로서, 광미공에 따르면 “격론 끝에 전시장을 망월동 5‧18묘역 일대”의 야외전으로 결정했던 전시였다. 광미공은 이 전시에 대해 “냉전이후 미국의 새로운 역할을 그림으로 다루어 본 최초의 전시회”이며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파격적인 전시회”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이 전시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이 전시는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것을 질문하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실내 전시장이 아닌 상징적인 야외공간을 (문제를 발언하는) 전시장소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에 갖고 있던 관습적인 하나의 틀을 깬 전시였던 것이다. 이처럼 1991년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한 해였다. 최초의 야외전인 ‘거리미술전’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지만, 무자비한 공권력에 희생당한 강경대 열사와 이러한 살인‧폭력 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후 사망한 박승희 열사 사건 등은 광주전남지역대학미술패연합 광주미술선전대의 거리미술투쟁과 같은 수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1991년의 정국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1년 오월전 <오월에 본 미국>, 본격적인 최초의 거리미술전

 “전시라는 개념이 첨가된 ‘거리미술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91년 제3회 오월전부터라 할 수 있다. <오월에 본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제3회 오월전은 1988년 결성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이하, 광미공)에서 주관한 전시로서, 광미공에 따르면 “격론 끝에 전시장을 망월동 5‧18묘역 일대”의 야외전으로 결정했던 전시였다. 광미공은 이 전시에 대해 “냉전이후 미국의 새로운 역할을 그림으로 다루어 본 최초의 전시회”이며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파격적인 전시회”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이 전시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이 전시는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것을 질문하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실내 전시장이 아닌 상징적인 야외공간을 (문제를 발언하는) 전시장소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에 갖고 있던 관습적인 하나의 틀을 깬 전시였던 것이다. 이처럼 1991년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한 해였다. 최초의 야외전인 ‘거리미술전’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지만, 무자비한 공권력에 희생당한 강경대 열사와 이러한 살인‧폭력 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후 사망한 박승희 열사 사건 등은 광주전남지역대학미술패연합 광주미술선전대의 거리미술투쟁과 같은 수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1991년의 정국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게 되었던 것이다.“